사랑인가 집착인가, 감정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보자
“너 없이 나는 살 수 없어.” 오랫동안 유행가 가사나 드라마 대사 속에서 낭만적으로 반복되었던 이 말은, 실은 사랑이 아니라 깊은 집착을 드러내는 문장입니다. 김주환 교수는 이 강연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잘못된 사랑의 신화를 믿고 살아왔는지를 뼈아프게 지적합니다.
진짜 사랑은 상대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내면의 힘에서 출발합니다. “너 없으면 나는 안 돼”는 말은 결국 “너는 내 행복의 조건이고, 동시에 내 불행의 조건”이라는 말입니다. 상대방이 내 곁을 떠나는 순간 나는 무너진다는 전제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아닌 두려움과 통제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진짜 사랑은 혼자서도 설 수 있을 때 시작된다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김 교수는 전전두엽(mPFC)이 활성화된 상태에서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평정심과 자기 인식 능력이 뇌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사랑은 사랑다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너 없으면 죽을 것 같다”는 감정은 편도체가 활성화된 상태에서 비롯됩니다. 이 편도체는 공포와 불안의 중심이며, 이 상태에서 우리는 집착, 불안, 폭력으로 이어지는 감정 소용돌이에 빠집니다. 이 감정은 결코 상대방을 존중하거나 평화롭게 사랑하게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연인은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너 없이도 잘 살 수 있어. 하지만 너와 함께일 때 더 행복해.” 이 기반이 되어야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 플러스가 될 수 있습니다. 관계에서 마이너스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관계 외에도 자신만의 중심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혼자 잘 산다는 것의 진짜 의미
혼자 잘 산다는 것은 단순한 독신 생활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칭찬, 인정, 관심 없이도 스스로의 삶을 평온하게 살아낼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인정 중독은 현대 사회에서 매우 흔한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삶, SNS에 인증을 올리지 않으면 가치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삶은 결국 자기 삶의 중심을 남에게 넘긴 상태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자기 삶의 주인은 자기 자신입니다.
예를 들어, 아무도 없는 산에서 홀로 걷는 순간조차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사하며 자신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혼자 잘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외로움을 고독으로 승화시키고, 자유를 실감하며 살아갑니다.
배경자아란 무엇인가: 존재의 근원적 자각
강연 후반부에서 다룬 ‘배경자아’의 개념은 다소 추상적이지만, 매우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김주환 교수는 배경자아를 “대상화할 수 없는 인식 주체”라고 말합니다. 쉽게 말해,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있는 그 상태’가 배경자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나는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 “지금 나는 아프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배경자아적 인식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감정이나 통증 그 자체는 사라지지 않더라도, 그로 인한 ‘서퍼링’ 즉 괴로움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알아차림이 강력한 이유는 거기에 끌려가지 않고 객관적인 관찰자가 되는 태도를 갖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는 명상의 핵심이며, 결국은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힘’과 직결됩니다.
결론: 혼자서도 설 수 있는 사람만이 진짜 사랑을 할 수 있다
김주환 교수의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누군가와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다면, 먼저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정립해야 합니다. 인정 중독을 버리고, 집착의 감정을 내려놓으며, 배경자로서의 알아차림을 통해 스스로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그에게 집착하지 않을 수 있고, 관계 속에서도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으며, 상실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내면의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부터라도 ‘너 없이 나는 살 수 없어’라는 로맨틱한 착각을 내려놓고,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연습’을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관련 키워드: 김주환 교수, 너 없이 못 살아, 집착과 사랑, 혼자 잘 사는 법, 자기존중, 배경자, 알아차림 명상, 인정 중독, 관계의 자율성, 감정 조절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