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행동의 뒤에 숨겨진 심리학적 진실
길을 걷다가 어깨를 부딪혔는데, 상대가 아무런 인사도 없이 휙 지나간 경험,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보았을 것이다. 그 순간 우리 머릿속엔 자연스럽게 “싸가지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그러나 김경일 교수는 이 단순한 판단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이런 행동의 배후에 있는 심리적 요인으로 **‘외로움’**을 지목하며, 이들이 싸가지 없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외로운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고맙다’, ‘미안하다’를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
외로움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가장 뚜렷한 특징 중 하나는 감사와 사과의 표현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감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표현하는 법을 잃어버린 것이다. 타인의 배려에 반응하지 못하고, 잘못에 대해 사과하지 않음으로써 점점 더 인간관계에서 멀어지게 된다. 이는 감정 표현의 결핍이 외로움으로 이어지고, 다시 외로움이 무례함으로 보이는 행동으로 발현되는 악순환이다.
김경일 교수는 실제 연구를 통해, 외로운 사람에게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의식적으로 하루에 몇 번씩 하도록 실험한 결과, 단 한 달 만에 외로움의 체감도가 유의미하게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외로운 사람은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
그렇다면 왜 외로운 사람은 무례하게 행동할까? 김 교수는 그 원인을 신체적, 심리적 요인에서 찾는다.
- 수면 부족
- 신체적 건강 저하
-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
- 사회적 연결망 부족
이러한 요소들은 회복 탄력성을 떨어뜨리고, 그 결과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서 자주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 법을 잃어버리고, 자연스럽게 혼자 남게 되는 것이다.
특히 외로운 사람은 누군가에게 문을 잡아주는 사소한 배려에도 고마워하지 않고, 복도에서 어깨를 부딪히고도 사과하지 않는다. 이는 단순히 인성이 나빠서가 아니라, 정서적 연결감이 결핍된 결과다.
예민한 대인배 vs 대심한 소인배
김 교수는 여기서 놀라운 개념을 제시한다. 그는 **“소심한 대인배”**라는 표현을 통해, 예민하지만 그릇이 큰 사람들이 많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이순신 장군처럼 꼼꼼하고 예민했지만,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큰 결정을 내릴 줄 아는 인물들이 그렇다. 이들은 반응은 섬세하지만, 결정은 용기 있게 내리는 사람들이다.
반대로 **‘대심한 소인배’**도 존재한다. 전혀 소심하지 않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며, 오히려 큰 사건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김 교수는 대표적으로 장영자 사건을 예로 들며, 예민함 없이 둔감한 채로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인물의 위험성을 강조한다.
좌절 옆에 숨겨진 ‘진짜 재능’
김 교수는 자녀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적절한 좌절”**이라고 강조한다. 부모가 모든 것을 대신 고민해주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스스로 미안함이나 감사함을 배우지 못한다. 그는 “좌절이 없는 아이는 공존의 감각을 갖기 어렵다”고 말하며, 자신의 적성 또한 좌절의 경계선에서 드러난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어떤 일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재능은 아닐 수 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고, 그 옆에 존재하는 좌절의 감정이야말로 자신의 진짜 적성을 찾는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가 음악을 좋아한다고 해서 음악가의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좌절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포기하고 싶고, 무엇에 도전하고 싶은지를 알아야만 진정한 적성과 재능을 찾을 수 있다.
외로움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이 영상을 통해 우리는 단지 싸가지 없다고 여겼던 사람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들이 가진 감정 표현의 부족, 사회적 연결의 단절, 반복된 좌절 회피가 외로움으로 이어지고, 그 외로움이 결국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든 어른이든 간에,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싸가지 없음’을 느낄 때, 그 이면에는 표현하지 못한 외로움이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외로움은 누군가의 작은 관심, 고맙다 미안하다의 한마디로 치유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가 심리적 구조물의 일부라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겨 보게 된다.
때로는, 친절한 내가 더 화가 날 때도 있다
이 모든 심리적 설명을 알고 있고, 외로운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현실 속 관계는 녹록지 않다. 특히 내 친절함이 무시당하거나, 반복되는 무례함에 아무 반성도 보이지 않을 때, 오히려 ‘내가 왜 친절해야 하지?’라는 분노가 들기도 한다.
필자 역시 그런 감정을 겪은 적이 있다. 친절한 말, 따뜻한 배려를 했지만 돌아온 것은 차가운 무반응이었고, 그런 날에는 도리어 내가 친절했기 때문에 더 화가 났다.
이런 감정은 결코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건강한 인간관계’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는 증거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소중하지만, 그 시도는 반드시 ‘상호성’이라는 조건 위에 놓여야만 한다.
그렇기에 필자는 지금, 그들과 필요한 만큼만, 감당 가능한 선에서만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가족이라서 무조건적인 헌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외로움을 이해하려 노력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해가 나를 해치게 해서는 안 된다. 관계는 선의로 시작하지만, 균형과 존중이 없으면 반드시 균열로 끝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당신 역시 그런 외로움과 무례 사이에서 어떤 감정을 겪고 있을지 모른다. 그럴 때는 기억하자. 이해와 친절은 선택이지 의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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