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디 머큐리의 치통이 만든 역사적 사건
1976년 12월 1일, 런던의 TV 방송국 템즈TV의 저녁 뉴스쇼 ‘투데이(Today)’에 출연할 예정이던 밴드는 퀸이었다. 하지만 프레디 머큐리의 갑작스러운 치통으로 퀸은 출연을 취소하고, 대타로 섭외된 팀이 바로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였다. 이들의 인터뷰는 단 2분 남짓이었지만, 진행자와 섹스 피스톨즈 멤버들은 이미 술에 취한 상태였고, 방송 중 폭언과 욕설이 난무했다. 런던 지역 방송이었음에도 영국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했고, 이 사건은 펑크 록을 단숨에 대중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펑크는 어떻게 시대의 불만을 대변했나?
펑크락의 등장은 단순한 음악 스타일의 출현이 아니었다. 1970년대 영국은 경제적으로 깊은 침체기였고, 오일쇼크 이후 인플레이션, 단전, 강제 3일 근무제, IRA 테러, IMF 구제금융, 전국적 총파업 등으로 청년 실업이 극심했다. 사회 전반에 걸쳐 미래가 없는 듯한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섹스 피스톨즈의 ‘Anarchy in the UK’는 청년들의 분노와 불만을 대변하는 노래가 되었다.
이와 함께 펑크 패션도 폭발했다. 파괴적이고 도발적인 디자인으로 무장한 펑크 스타일은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맬컴 맥라렌이 운영하던 부티크 ‘SEX’에서 출발했다. 뒤집힌 십자가, 나치 문양, 백설공주를 비튼 티셔츠, 찢어진 망사 스타킹, 스파이크 장식, 쓰레기봉투 드레스 등은 기성 질서에 대한 저항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상징이었다.
펑크에 염증을 느낀 이들이 만든 새로운 흐름
그러나 과격한 펑크 패션과 네오나치 스킨헤드의 유입은 일부 청년들에게 피로감을 안겼고, 이들은 정반대의 미학으로 저항했다. 1978년 런던 에어스트리트의 작은 클럽 ‘빌리츠(Billy’s)’에서는 데이빗 보위와 록시뮤직의 음악에 맞춰, 화려하고 창의적인 옷차림으로 무장한 청년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 비주얼 중심의 클럽 문화는 ‘블리츠 키즈(Blitz Kids)’라 불리며 새로운 유행을 이끌었다.
블리츠 클럽은 입장 드레스코드가 엄격했다. 돈보다 창의성이 중요했고, 공작새처럼 눈부신 의상과 양성성(남녀가 뒤섞인 화장과 패션)은 1980년대 뉴 로맨틱(New Romantic) 패션의 전조가 되었다.
뉴 로맨틱: 새로운 낭만주의의 탄생
글램록이 1970년대 초반 데이비드 보위 등에서 시작되었다면, 뉴 로맨틱은 이를 시각적으로 계승하면서 더욱 풍성하게 장식된 레이어드 룩, 주름 셔츠, 스카프, 레이스, 캬바레 분장, 삐에로 화장 등으로 차별화되었다. 프랑스 혁명기, 러시아 구성주의, 베를린 캬바레 등 다양한 문화가 믹스매치 되었고, 남성들도 과감하게 메이크업을 즐겼다.
클럽 블리츠의 하우스 밴드 **스펜더 발레(Spandau Ballet)**는 이 트렌드의 대표주자였다. 그들의 대표곡 “True”가 대중적으로 알려졌을 땐 이미 세련된 이미지였지만, 데뷔 초기의 모습은 완전히 뉴 로맨틱 그 자체였다. 이들을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가 바로 “유럽 엔틱(European Antic)”, 또는 **”뉴 로맨틱”**이었다.
듀란 듀란과 MTV의 등장
블리츠 클럽의 경쟁 클럽이었던 버밍엄의 럼 러너(Rum Runner)에서도 같은 움직임이 일었고, 이곳의 하우스 밴드 **듀란 듀란(Duran Duran)**은 MTV 시대의 시각적 감성을 선도했다. 무대 의상, 헤어스타일, 뮤직비디오의 미장센까지 모두를 고려한 완성형 팝스타로서 이들은 ‘세컨드 브리티시 인베이전(Second British Invasion)’의 주역이 되었다.
화려함은 왜 그들에게 필요했나?
뉴 로맨틱 패션은 단순한 멋의 표현이 아니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사회적 지위도 낮았던 청년들은, 패션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신을 증명하고자 했다. 블리츠의 문턱을 넘는 순간, 화려한 의상은 현실의 무력감을 극복하는 유일한 도구가 되었다. 이들은 현실에선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클럽 안에서는 ‘히어로(Hero)’가 될 수 있었다.
실제로 클럽 포 히어로즈(Club for Heroes)의 마지막 곡은 언제나 데이비드 보위의 ‘Heroes’였다. 가사처럼 “우리 아무 것도 없지만, 오늘만큼은 영웅일 수 있다”는 감정이 이들을 사로잡았고, 이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선 사회적 메시지였다.
결론: 프레디 머큐리의 치통이 바꾼 영국 청년의 꿈
1970년대의 펑크가 분노와 절망의 분출이었다면, 1980년대 뉴 로맨틱은 절망을 감추는 화려한 가면이자 예술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의 시작점엔, 프레디 머큐리의 치통이 있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저 반항적이거나 튀고 싶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영웅이라 믿기 위해 청년들은 꽃단장을 했다. 그들의 패션은 시대의 자화상이었다.
키워드: 세컨드 브리티시 인베이전, 펑크 패션, 뉴 로맨틱, 블리츠 키즈, 스펜더 발레, 듀란 듀란, 프레디 머큐리 치통, 섹스 피스톨즈, 영국 청년 실업, 1980년대 패션
답글 남기기